
대출 규제 강화가 서울 부동산 시장의 지형을 뒤바꾸고 있다. 고가 주택을 겨냥한 규제가 오히려 중저가 아파트로 매수 수요를 집중시키며, 서울 외곽 지역이 집값 상승률 상위권을 독식하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KB부동산시세에 따르면 지난달 관악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해 12월 대비 8.1% 상승하며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동대문(7.41%), 강서(7.39%), 서대문(7.19%), 성북(6.96%)이 그 뒤를 이으며 외곽·서민 주거 밀집 지역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반면 서울의 대표 고가 지역인 강남구는 같은 기간 유일하게 하락세를 기록했다. 정책이 의도한 고가 시장 냉각은 실현됐지만, 그 수요가 중저가 지역으로 이동하는 ‘풍선 효과’가 현실화한 셈이다.
15억 이하 ‘대출 가능’ 라인이 수요 가른다
수요 쏠림의 핵심 배경은 2025년 10월 시행된 10·15 부동산 대책이다. 이 대책은 15억원 이하 주택에 최대 6억원 대출을 허용하되, 15억~25억원 구간은 4억원, 25억원 초과는 2억원으로 한도를 대폭 낮췄다.
상승률 상위권 자치구의 평균 실거래가는 이 기준선 이하에 집중돼 있다. 서울시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관악구의 4월 평균 매매가격은 8억 7966만원으로 8개월 연속 8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동대문 역시 9억원대다. ‘6억원 대출 가능’이라는 정책 기준이 사실상 매수 결정의 핵심 변수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개별 단지에서도 이 흐름은 뚜렷하다. 관악파크푸르지오 전용 84㎡는 올해 초 9억 8000만원에 거래됐다가, 지난 3월 11억 3000만원에 최고가를 경신했다.
전세 매물 32.8% 급감…수급 불균형 심화
전셋값 오름세도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가파르다. 강북이 5.53%로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고, 성북(4.72%), 동대문(3.81%), 관악(3.52%), 강동(3.17%)이 뒤를 이었다.
문제는 전세 매물 자체가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전세 매물은 현재 1만 5626개로, 지난해 말 2만 3263개 대비 32.8% 줄었다. 서울 전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과 대출 규제 여파로 월세 전환이 가속화한 결과다.
두산위브트레지움 전용 114㎡는 지난달 8억 5000만원에 신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같은 물건의 실거래가가 6억원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수개월 만에 2억원가량 뛴 것이다.
“하반기 변수 따라 보합 전환 가능성도”
전문가들은 중저가 지역 강세가 인접 경기권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서울 중하위 지역의 가격 강세 현상은 인접한 경기권역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하반기 세제 개편과 물가 상승에 따른 금리 재인상 우려 등 변수에 따라 보합 흐름을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세 매물 부족이 매매 수요를 추가로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지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일부 수요자는 전세 매물 부족으로 대출을 활용한 매수를 고민하고 있다”며 “6억원 대출이 가능한 중저가 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