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지정학적 긴장이 아시아 경제 전반의 하방 리스크로 번지는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13개국이 역내 금융안전망의 근본적인 구조 개혁에 합의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글로벌 금융여건 긴축이 겹치면서 역내 공조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평가다.
한국은행은 3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제29차 아세안+3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회원국들이 이 같은 위기 인식을 공유하고 공동 대응 기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일·중 3국과 아세안 10개국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 등이 참석했다.
에너지·금융여건 ‘3중 압박’…역내 리스크 경고음
회원국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중동 사태가 역내 경제의 하방 리스크를 크게 키웠다는 데 공감했다. 구체적으로는 에너지 가격 상승, 글로벌 금융여건 긴축, 자본흐름 변동성 확대 등 세 가지를 주요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다.
각국은 “금융시장의 과도한 변동성과 무질서한 움직임, 글로벌 유동성 상황 변화로 인한 리스크를 면밀히 주시하며 국내 여건에 맞는 대비 태세를 갖추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세안 국가들에게 유가 상승이 물가와 경상수지에 미치는 영향이 특히 크다는 점에서, 역내 협력의 긴박성이 강조됐다.

2400억달러 안전망, ‘납입자본’ 방식으로 전환
이번 회의의 핵심 성과로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의 재원 구조 전환 로드맵 승인이 꼽힌다. 현재 2400억달러 규모인 CMIM은 위기 시 자금 투입까지 시간이 걸리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승인된 납입자본(PIC) 방식은 평상시에 회원국들이 자본금을 사전에 납입해두는 형태로, 위기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회원국들은 PIC 법인에 요구되는 핵심 원칙 4개 중 3개에 이미 합의했으며, 남은 거버넌스 원칙에도 조속히 합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납입 자본금을 각국 외환보유액으로 인정받는 방안을 놓고 IMF 실무진과의 논의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채권시장 넘어 주식·파생상품으로…ABFMI 출범
금융시장 인프라 확충 논의도 진전됐다. 회원국들은 역내 채권시장 육성을 위해 운영해온 ‘아시아 채권시장 발전 이니셔티브(ABMI)’를 주식과 파생상품 분야까지 포괄하는 ‘아시아 채권·금융시장 발전 이니셔티브(ABFMI)’로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역내 자본시장의 저변을 넓히고 금융 충격에 대한 완충력을 높이려는 취지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중동 사태로 역내 금융안전망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으며, PIC 전환이 금융안전망의 신뢰성과 가용성, 대응성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며 IMF 등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CMIM 간 연계성 강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은행은 말레이시아 중앙은행과 함께 PIC 실무그룹 공동의장을 맡아 구체적인 설계를 주도하고 있다.
내년 아세안+3 회의는 한국과 싱가포르가 공동의장국을 맡아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