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견 완성차업체들이 중국 자동차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빠르게 높이고 있다.
르노코리아는 지난해 중국 지리그룹으로부터 9,527억원어치 차량·부품·기술을 사들였고, KG모빌리티(KGM)는 올해 들어 중국 체리자동차에 약 8,400만달러(약 1,200억원)를 지급했다.
지리·체리, 돈만 받은 게 아니다…플랫폼과 지분까지 쥐었다
르노코리아는 2022년 르노그룹과 지리그룹의 파트너십에 따라 지리를 지분 34.02%의 2대 주주로 받아들였다. 이후 지리차의 CMA(Compact Modular Architecture)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중형 SUV ‘그랑 콜레오스’를 2024년 9월 출시했고, 관련 부품 매입이 폭증했다.
지리그룹 상대 매입액은 2022년 2,709억원, 2023년 399억원, 2024년 5,237억원에서 2025년 9,527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3년 새 3배 이상 불어난 규모다. CMA 플랫폼은 볼보 XC40, 폴스타 등에도 쓰이는 글로벌 모듈형 아키텍처로, 내연기관부터 전기차까지 수용 가능한 구조다.
KGM의 구조는 더 복잡하다. 2024년 10월 체리자동차로부터 PHEV 플랫폼 ‘T2X’ 기술 라이선스를 취득했고, 올해 8월 2일에는 체리차로부터 전환사채(CB) 방식으로 7,500만달러(약 1,081억원)를 투자받았다. CB 전량이 주식으로 전환될 경우 체리차는 KGM 지분 16.22%를 확보해 사실상 2대 주주로 올라선다.
점유율 3분의 1로 쪼그라든 중견 3사, 중국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중국 기술 의존의 배경에는 중견사들의 급격한 경쟁력 약화가 자리한다. 르노코리아·KGM·한국GM 등 중견 3사의 지난해 내수 판매는 합산 107,607대로, 전체 내수 시장의 6.4%에 불과했다. 10년 전인 2015년 304,309대(점유율 16.6%)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수치다.
현대차·기아의 독주와 수입차 시장 성장 사이에서 협공을 당하면서 자체 R&D 투자 여력이 소진됐다. 전기차·PHEV를 독자 플랫폼으로 개발하려면 수조원과 4~5년 이상이 필요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현실에서 이미 검증된 중국산 플랫폼은 가장 현실적인 탈출구였다.
KGM은 T2X 플랫폼을 활용해 중형 SUV ‘SE10’을 개발 중이다. PHEV 모델과 2.0L 가솔린 모델로 구성되며, 기존 렉스턴의 후속 포지션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르노코리아의 그랑 콜레오스 사례처럼 SE10 판매가 본격화하면 체리차 부품 매입 규모도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3대 중 1대는 중국산…기술 하청화 우려 현실로
중국 기술의 침투는 완성차 플랫폼에만 그치지 않는다. 2026년 상반기 국내 신규 등록된 중국산 전기차는 69,513대로 전년 동기 대비 178.7% 급증했다. 전체 전기차 신규 등록 중 중국산 비중은 35.0%로 ‘전기차 3대 중 1대’가 중국 생산 차량인 셈이다.
수입차 시장에서도 제조국 기준 중국산 비중은 상반기 41.2%로 독일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르노코리아의 부산공장은 이미 지리그룹 산하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폴스타4’ 위탁생산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 공장이 중국계 글로벌 브랜드 생산 기지로 재편되는 흐름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술 의존 확대는 단기적으로 개발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독자적인 기술개발 역량과 산업 생태계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며 “미래차 핵심기술의 자체 확보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르노코리아와 KGM의 중국 기술 의존은 생존을 위한 현실적 선택이지만, 플랫폼 종속이 부품 조달과 자본 구조까지 잠식하는 현 흐름을 방치할 경우 한국 완성차 산업이 ‘설계·브랜딩은 중국, 조립만 한국’이라는 구조에 고착될 수 있다는 경고가 무겁게 울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