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브랜드가 수십 년간 장악해온 동남아 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중국 브랜드들이 전기차(BEV)와 SUV를 앞세워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저가·저품질’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중국 브랜드는 이제 OTA(무선 업데이트),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대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기본으로 탑재한 ‘첨단 가성비’ 차량으로 변신해 동남아 중산층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BYD가 혼다를 앞질렀다
인도네시아자동차산업협회(GAIKINDO)에 따르면 지난 7월 BYD는 도매 기준 6,569대를 판매해 도요타(21,642대), 다이하쓰(14,125대)에 이어 전체 3위에 올랐다. 전년 동기(2,335대) 대비 약 3배에 달하는 수치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소매 판매 지표다. 같은 달 소매 기준으로 BYD는 5,240대를 기록하며 혼다를 제치고 4위에 올랐다. 재쿠(Jaecoo·8위·3,200대)와 지리자동차(11위·1,965대)까지 포함하면, 중국 브랜드들이 이미 상위권을 촘촘히 채우고 있다.
올해 1~7월 누적으로 보면 흐름은 더욱 선명해진다. 중국 브랜드 전체 도매 판매는 94,971대로 전년 동기 대비 82% 급증했다. BEV 세그먼트에서는 쏠림 현상이 더 극단적이다. 2025년 1~11월 인도네시아 순수 전기차 도매 판매 82,525대 중 절반에 가까운 40,151대를 BYD 단일 브랜드가 차지했다.

말레이시아 상위 10위 중 4개가 중국 브랜드
말레이시아 역시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 2026년 7월 말레이시아 신규 등록 대수는 80,030대로 전년 동월 대비 5.8% 증가한 가운데, 상위 10위 안에 중국 브랜드 4개가 이름을 올렸다. 재쿠(5위·1,309대), BYD(6위·1,226대), 제투어(7위·1,216대), 체리(10위·831대)가 그 주인공이다.
특히 BYD의 판매량은 전년 동월(870대) 대비 40% 이상, 제투어는 200% 이상 증가했다. 연간 기준으로도 2025년 BYD는 14,407대, 체리는 12,942대를 각각 판매해 마쓰다·닛산·메르세데스-벤츠·BMW 같은 전통 강자들을 추월했다.
구도는 더 복잡하다. 말레이시아 자국 브랜드 1위인 프로톤(Proton)은 사실상 지리자동차(Geely)의 전략적 지배 아래 있다. 통계상 ‘국산 브랜드’로 분류되지만, 기술과 자본은 중국에서 흘러들어오는 구조다. 일본·한국 완성차 OEM 입장에서는 ‘중국 독자 브랜드’와 ‘중국 자본이 지배하는 현지 브랜드’라는 이중 압박을 동시에 받는 상황이다.
베트남은 ‘초입 단계’…공장 가동 후가 진짜 변수

베트남은 현지 브랜드 빈패스트(VinFast)가 2025년 175,099대·점유율 약 29%로 독주하는 시장이다. 도요타가 약 12%로 2위를 지키는 가운데, 현대차 등 한국 브랜드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브랜드는 아직 ‘시장 초입 단계’지만 성장 속도가 심상치 않다. BYD는 2024년 485대에서 2025년 3,718대로 연간 판매가 7배 이상 뛰었다. MG(모리스 개러지)는 2020년 재진출 이후 누적 판매 4만 대를 넘어섰다. 체리는 베트남 북부 흥옌(Hưng Yên)성에 현지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이며, 올해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지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CKD(현지 조립) 방식으로 관세 부담이 줄어든다. 빈패스트와 도요타, 현대차가 각축을 벌이는 시장에 중국 브랜드가 ‘현지 생산 경쟁력’까지 갖추면 경쟁 지형이 급변할 수 있다. 베트남 정부가 중국 EV의 확산을 견제하는 규제 논의를 진행 중인 것도 이 같은 위기감의 반영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브랜드들이 가성비와 첨단 기술을 앞세워 동남아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며, “한국·일본 브랜드가 점유율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려면 가격 경쟁력 강화와 신기술 개발을 통한 명확한 차별화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